나의 본가에 모임이 있어서 모임 전날의 늦은 시간에 갔다.
남편과 함께 복싱을 격하게 하고 난 뒤에 출발했다.
관장님이 격하게 시키는 체력운동에 힘들어하는 남편을 놀렸다. 귀여워서.
"격투기 선수가 꿈이라면서 체력운동이 그렇게 힘들어?"
복싱장에서 내 속이 안좋았다. 뭘 잘못 먹었나.
집에 오니 남편 속이 안좋단다. 뭘 잘못 먹은걸까.
복싱에, 이동시간까지 합쳐져서 몸이 곤했던 우리는 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자리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한참 꿀 같이 잠을 자는데 옆에서 낑낑거린다.
깜짝 놀라서 깨어나보니 남편이 낑낑거리고 있다.
이런적이 없었는데 남편이 아픈가?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사람이.
그때가 새벽3시였다. 3시부터 남편의 고통이 시작된 것이다.
한참 힘들어하는 남편의 배를 쓸어주고 있는데, 저쪽 방에서 의료인인 내 동생이 나온다.
출근을 한다는 탓이다. 형부가 배가 아프다는 얘기를 듣고 동생이 찾아주는 약을 먹어도 별 차도가 없다.
남편은 너무 속이 불편하다며 집 밖으로 나갔다. 초록매실을 사 마시면 나을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누군가 밖을 나가는 소리에 아빠가 놀라서 나오셨다.
남편은 편의점에서 초록매실만 사마신게 아니다. 산책을 하면 좀 괜찮을거라고 생각해서 30분은 걷고 왔댄다.
집에 들어온 남편의 얼굴이 허옇다. 원래 얼굴이 까무잡잡한 사람인데, 심상찮다.
남편의 얼굴을 본 아빠가 옷을 입고 응급실에 가자며 채비를 하신다.
내가 자주 장염으로 고생했던터라 우리아빠는 아픈 사람 얼굴만 보면 척이다.
그렇게 남편의 두번째 응급실행이 시작되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의사의 진찰을 받고 남편이 병원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그때부터 내 마음이 찢어질듯이 아프다. 안 아팠으면 좋겠다. 응급실까지 오다니
마음이 아픈것도 잠시.
남편이 자기 사진을 찍어달랜다. 응급실에 와서 병원복을 입은게 신기하다는 것이다.
밤새 아파하고도 저렇게 철이 없을 수가 있을까?
하.. 밤새 잠을 자지 못한 나는 열이 받는다.
남편은 피검사에, CT까지 찍었다. 만약 내가 응급실에 왔다면 나는 거부했을테지만
평소 위장이 튼튼하던 사람이 저렇게 아프니 가슴이 내려 앉는다.
뭐가 되었던지 남편이 안아플 수 있다면 다 하고 싶은 마음이다.
수액을 맞고는 남편은 진정이 되었다. 배가 살짝 아프긴 한데 부대끼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비로소 응급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술을 마시다가 넘어져 머리가 깨져 응급실에 온 아저씨는 아직도 술이 안깬 모양인지 헛소리를 해댄다.
머리가 깨지다니. 심각한 모양이다. 술이 웬수다.
어디가 아파서 응급실에 온지 모를 아이는 링거를 놓는 내내 미친듯이 울어대느라 목이 쉬었다.
얼마나 아프고 무서우면 저리 울까 싶어 마음이 아프다. 부모 마음이 찢어 지겠다 싶다.
가장 심각한 할아버지는 내내 내장까지 토할듯이 토악질을 하시다가 의식을 잃으신다.
온갖 삼라만상이 가득한 곳이 바로 이 응급실이다.
심각한 사람들이 있는 통에, 멀쩡해진 남편과 나는 머쓱하다.
CT결과가 나왔다. 입체적으로 남편의 뱃속 사진을 보여주는데 장이 많이 부어있다.
그와중에 뱃살도 많이 부어있다. 살짝 부끄럽다.
아침이 되어 응급실을 함께 나섰다. 다행이다. 남편이 많이 나았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와 함께 흰머리가 온 머리털을 덮을 때까지 늙어가고 싶은것이 내 바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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