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둘째 이계동.
그녀는 마침내 무럭무럭 자라나서 말도 할 수 있는 아이가 되었다.
분명히 침을 많이 흘리는 아이는 말을 잘 한다고 했는데
계동이는 가족 앞에서는 말을 잘 했지만
남들 앞에서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수줍은 아이였다.
해서, 그녀의 말을 대신 하는 사람이 내가 되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나는 어릴적 침을 많이 흘리진 않는 아이였던 것 같은데
계동씨가 자신의 말을 나에게 대신하여 시키는 덕분에
오히려 내가 말을 잘 하는 아이로 자라났다.
계동씨는 겉으로 보기에 수줍음이 많고 아주 귀엽고 예쁜 아이였지만
속 안으로는 엄청난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둔한 언니인 나를 쥐락펴락했다.
주 무기는 눈물이었다.
계동씨는 언니인 내 마음이 약한 것을 알고 있었으며
눈물을 자유자제로 흘릴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두뇌와 능력으로 원하는 대로 나를 움직였다.
따라서 문구점에서 준비물을 구비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계동이가 문구점 아저씨에게 "준비물 주세요."라는 말을 하기엔 너무나 수줍었기 때문에
문구점 밖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뚝 흘렸고 그 눈물을 본 나는 마음이 아파서
그녀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그녀가 집에 학교 준비물을 놓고 왔을 때 그녀가 놓고 온 물건을 가져오는 것도 내 몫이었다.
계동이가 그것을 가지고 오기에 계동이 마음은 너무나 불안하고 무서웠기에
나를 찾아와서 또다시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뚝 흘렸고 역시나 눈물에 마음 아픈 나는
재빨리 달려서 준비물을 가져 와야 했다.
그녀는 나의 그림자처럼 나와 함께 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다.
유치원에 가는 언니를 따라 가겠다고 한복 속치마 같은 옷을 입고 와서
집 현관에서 기대하는 눈빛으로 생글생글 웃으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안된다며 만류하는 엄마에게 눈물로 대항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눈물을 보고 마음이 약해지는 나는 한복 속치마를 입은 나의 첫번째 동생과 함께
유치원에 가서 그날은 하루종일 그녀와 함께 수업을 듣는다.
몇번을 그렇게 나와 짝꿍처럼 나를 따라다니다가 급기야 그녀도 이른 나이에 유치원에 다니게 된다.
혹은
내가 친구들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을 때
나를 따라가겠다고 행복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 본다.
그녀의 행복한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나는 결국 둘째 계동씨를 데리고 친구 생일 파티에 간다.
그리고 함께 간 계동씨는 누구보다 신나게 파티를 즐기는 것이다.
훗날 막둥이 개뚱이가 이날의 계동씨 만큼 컸을 즈음에는
내가 초대받은 생일파티에 가는 인원은 1플러스2가 되어 1명을 초대했는데 3명이 대동하게 된다.
이는 나중의 글에서 또다시 이어쓰기로 하겠다.
하여튼 둘째 계동이는 이처럼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곤란하기도 하고 귀찮은 적도 있었지만 내심 나를 따라다니는 계동이가 귀엽기는 했다.
언니가 가는 곳이 뭐 그리 좋은 곳이라고 기대하고 따라다니는 동생의 모습이니까
그런 계동이가 이제는 커서 직업인이 되었다.
내가 어디를 갈 때 이제는 계동이가 나를 따라오지 않는다.
허전한 마음이 든다.
예전의 그 찐득이 이계동은 이제 없고
도도하고 세련된 이계동이 자신의 일을 하며 자신의 친구와 지인들을 만나러 다니는 바에 있어서
굉장히 기특하고 멋지며 응원하지만 살짝은 허전하기도 하다.
너는 예전에 언니를 그토록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찐득이 이계동의 시절을 기억하는지.
'세자매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 세자매 이야기 "위로의 천재 이계동" (0) | 2024.02.02 |
---|---|
#16 세자매 일기 "네, 제가 태어났습니다. 전 피곤하니 자볼게요." (2) | 2024.01.31 |
#14 세자매 일기 '둘째 계동이의 탄생' (2) | 2024.01.28 |
#13 세자매 이야기 '영원한 아기 막둥' (2) | 2024.01.27 |
#12 세자매 이야기 '계동씨와 개똥이의 사랑' (0) | 2024.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