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를 만난 건 22살 3월이었다.
같이 사는 언니가
"산냥아, 괜찮은 남자를 만나면 깃발을 꽂아야 한다." 라고 말한 터라,
이성에 대한 촉을 잔뜩 세운 때였다.
대학 졸업 전에 남자친구는 만들고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애는 마치 중학생 같았다.
축구 좋아하는 중학생.
거기서도 남자친구 만들기는 글렀다 싶어서 일이나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다.
어느날 동아리 모임을 하는데 누군가 뒤늦게 참여한다고 했다.
아뿔싸, 늦은 한 사람을 위한 저녁밥이 없었다.
내 것이라도 주면 좋으련만, 이미 먹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얼른 뛰어서 도시락을 사왔다.
뒤늦게 온 사람은 그애였다.
안 올 줄 알았는데.
그 애는 정말 성실했다.
다른 일이 있어도 무조건 모임에 참여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애는 축구모임을 하는 줄 알고 동아리에 가입했다고 했다.
우리 동아리는 선교 동아리였는데 남학생이 없어서 축구 모임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그 애는 꾸준히 모임에 참여했다.
의외였다.
들어온 목적과 어긋나서, 나라면 드문드문 나오거나 안나올것같았는데
그 애는 그래도 자기가 동아리에 들어온 이상 항상 성실하고 꾸준했다.
그점이 인상적이었을 뿐 그가 이성으로 보이진 않았다.
나는 대학교 4학년, 그는 신입생이었기 때문에
나이의 선을 넘고 싶지는 않았다.
1학기 마지막 모임날 그날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나는 시험 때문에 며칠 밤을 새우고 예민해진 상태였고
쉬고 싶었으나 동아리에 대한 책임감때문에 1박2일 모임에 참여했다.
얼굴만 비취고 오려고 했는데,그와 대화하며 괜시리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
그때 알았다.
아 선을 넘었다.
내가 스스로 내 마음의 선을 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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