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노력의 배신', 김영훈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노력의 힘이 너무 과장되어 있다. 인생에서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노력으로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으면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성공했을 것이다. 노력보다 훨씬 더 강한 타고난 능력과 자질, 그리고 환경과 기회라는 주요인이 있으며, 그것들은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또한 노력조차도 타고난 능력임을 주시해야 한다.
그렇다. 맞다. 흑흑.
나는 몇 년간 죽을 힘을 다해서 공부했지만 원하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게 과연 노력의 탓이었을까?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공부하면서, 느껴지는 어떤 벽을 뚫기 위해서 기질적이고 성격적인 어떤 특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담대함과 무대뽀
나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다소 소심하고 꼼꼼하며 완벽주의적인 성격이다.
그리고 굉장한 인내와 끈기로 끝까지 노력하는 성격을 타고 났다.
내게 몇 시간 동안 앉아서 공부하는 것은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은 일이다. 하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시험 시간에, 풀리지 않는 문제를 만났을 때 당황하지 않고 에이 몰라하면서 넘길 수 있는 성격이 내겐 없었다.
결국 원래 내 성적보다 훨씬 못 미치는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에 나는 노력 신봉 공화국의 열렬한 노력 맹신론자였다.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고 생각하면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도 언젠가 바위는 깨진다는 생각으로 밀어부치면서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지기 이르렀다.
자괴감에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고 내 노력을 의심했다.
하지만 이제는 노력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여전히 믿고 싶지 않지만 인간의 삶에는 '운'이라는 요소가 아주 강력하게 작용하는 듯 하다.
그리고 요즘에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노력으로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 일인지 생각하게 된다.
경쟁으로 줄 세우기를 하고, 경쟁에서 밀리면
노력의 탓, 즉 개인의 탓으로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굉장히 폭력적인 일이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환생론과 무엇이 그리 다른지 잘 모르겠다.
결과가 나쁜 사람들은 노력을 하지 않았으니 나쁜 인생을 사는 것이 당연하고,
결과가 좋은 사람들은 노력을 열심히 했으니 좋은 인생으로 보답받고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은 한계가 있는 존재이다.
우리는 인생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합당한 이유를 찾고 싶어하지만,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대다수는 이유가 없으며, 설명할 수 없지만 '운'의 영역임을.
사람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그렇게 까지 엄청나게 바꿔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각자 자신의 특성과 성격을 수용하고, 더 나아가 공동체적으로는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책임을 함께 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이렇게 노력해도 보장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몹시 두렵고 무서울 때가 있었다.
그 때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해주신 말씀이 있다.
"산냥아, 인생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거야.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운거야."
그렇다. 노력은 인지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하지만 인생은 인지할 수 없는 영역에서도 일어나는 법이다.
따라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린다는 것은 너무한 일이다.
국가라는, 사회라는 공동체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교육도 이제는 바뀌고 있다고 한다.
예전 명령과 상벌 체계에서 공동체적인 회복적 생활교육으로.
사회도, 우리의 생각도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