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일기

#7 결혼일기 '속았다.'

이산냥 2023. 12. 4.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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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봤을 때는 별생각 없었다.

뭐, 있구나. 정도?

 

동아리 mt에 그가 참여했을 때

나는 선배된 도리로 신입생인 그에게 물었다.

어때 대학생활 할 만 하니? 재밌는 건 있어?

그는 대답대신 씩 웃었다.

씩 웃는 이빨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어 있었다.

아, 김치요리를 먹었나보구나

나도 미쳤지.

씩 웃는 그의 모습이 순박하고 귀여워 보였다.

 

동아리 모임을 할 때

그는 말이 없었다.

과묵한 모습으로 누가 어떤 말을 하던지 묵묵히 들어주던 사람이었다.

 

그는 매번 나를 찾아왔다.

한번은 내가 책을 놓고 가서 가져다 주겠다고

(나 어짜피 내일 동방 갈꺼였는데..? 그 책 당장은 필요없는데..?)

한번은 고생하시는데 커피드시면서 하시라고

(나 딱히 고생하지는 않는데..? 그리고 너 짠돌이잖아..?)

한번은 학교 구경시켜달라고

(형들이 너 얼마나 예뻐하는데..? 형들한테 부탁하면 업어서 시켜줄텐데..?)

 

내가 그를 만나서 바쁘다고 돌려보내면

그는 웬지 모르게 삐쭉 입을 내밀고 순순히 돌아가곤 했다.

그리고 다음날 만나면 괜히 툴툴거렸다.

(그 과묵한 애가 툴툴..?)

 

그렇게 죽도록 나를 쫓아다니다가,

그는 결국 나와의 연애에 성공했다.

사실 나도 그를 좋아했기에 그렇게까지 죽도록 쫓아다닐 필요는 없었는데..

연애해서도 목숨걸고 나를 쫓아다니다가,

그는 결국 나와의 결혼에 성공했다.

 

그리고 매일 저녁 그는 회사에서 돌아와서계속해서 조잘댄다.

이젠 내가 이야기할 틈이 없다.

그가 계속 말하고 있기에 내가 끼어들 틈은 없다.

속았다.

그는 수다쟁이였다.